驚蟄(경칩)에 생각해 본 개구리

 “우수 경칩에는 대동강도 풀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우수에 풀렸던 대동강이 경칩에 다시 붙는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그때그때의 날씨에 따라 생겨난 속담입니다. 금년처럼 폭설이 내리고 함박눈이 쏟아질 때의 경칩은 두 번째 속담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경칩이 되면 겨우내 잠자던 개구리가 눈을 뜬다.”고도 합니다. 왜 그런데 하필 개구리가 눈을 뜬다고 했을까요? 겨울잠을 자는 동물은 개구리만이 아닌데 말입니다. 개구리는 뱀처럼 혐오스럽지도 않고, 곰처럼 미련하지도 않습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무논에서 올챙이부터 개구리가 되는 과정을 다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개구리는 시골 사람들에게는 참 친숙한 동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구리는 뱀처럼 사람을 물지도 않습니다. 봄철에 개구리들이 무논에서 부르는 노래는 멋진 교향곡입니다. 

 부여의 금와왕(金蛙王)은 바위 밑에서 금개구리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하필 바위이며 개구리일까요? 바위는 예로부터 불변의 상징이었습니다. 개구리는 겨울잠을 자는 대표적인 달동물입니다. 달은 보름을 지나 하현과 그믐을 거쳐 합삭에서 보이지 않다가 다시 초승과 상현을 거쳐 보름달로 부활합니다. 이 달처럼 사람들의 눈에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하는 동물을 달동물이라 하는데,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겨울 한 철 사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러한 달 동물은 생생력(生生力)의 상징입니다. 부여의 왕이 개구리 형상을 하고 바위 아래 있었다는 이야기는 부여라는 나라가 움츠렸던 개구리가 멀리 뛰듯이 부흥하고, 바위처럼 오래 오래 존속되며 부강하기를 비는 기원이 담긴 신화라고 하겠습니다. 단군신화에서 우리의 국모를 호랑이가 아닌, 곰이 변신한 웅녀에서 찾은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개구리를 생각하면 저는 어릴 때 생각이 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저희집에서 레그혼 병아리 100마리 사다가 양계를 시작했습니다. 저희 형제는 팔남매입니다. 저마다 한 가지씩 가축을 맡아서 길러야 했습니다. 큰 형은 소를 맡고 둘째는, 돼지는 맡고, 셋째인 저는 닭을 맡고, 넷째는 토끼를 맡고, …… 이런 식입니다. 저는 제가 맡은 병아리를 위할 줄만 알았지 개구리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몰랐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종다래끼와 나무 막대기 끝에 못이 여러 개 박힌 널조각을 단 개구리 잡이 연장을 둘러매고 들로 나갔습니다. 닥치는 대로 개구리를 잡았습니다. 매일 종다래끼가 가득 차야만 돌아왔습니다. 냄비에 넣고 끓여 쌀겨를 섞어서 병아리에게 나누어 주면 이놈들이 꽁지를 하늘로 치켜들고 머리는 먹이통에 처박고서 환장을 하고 먹어댔습니다.

 저는 이렇게 행복해 하는 병아리를 지켜보며 흐뭇해하곤 했었습니다. 고통 속에 죽어간 개구리의 아픔은 전혀 헤아리질 못했습니다. 그 덕에 장날마다 계란을 열 꾸러미도 넘게 장으로 져다 나를 수 있었고, 그 알 판 돈으로 학비를 충당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제 손에 죽은 개구리가 수만 마리는 될 것 같습니다. 내 닭을 살찌우려고, 계란을 많이 낳게 하려고, 그래서 학비를 보태려고 이런 살생을 저질렀습니다.

 개구리가 눈 뜨는 날, 내 손에 희생된 수많은 개구리의 명복을 빕니다. 언젠가 고향에 낙향해서 살게 되면 자그맣게 개구리 위령탑이라도 세워야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좀 더 형편이 나아진다면 개구리 자연사박물관을 세워서 온갖 종류의 개구리를 모아서 기르며 올챙이부터 개구리의 한 살이의 과정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보여 주고 싶습니다. 개구리에 대한 저의 엄청난 죄 값을 속죄하면서 말입니다.

<한자공부> 驚蟄[놀랄 경, 겨울잠 칩 - 겨울잠에서 놀라 깸, 24절기의 하나]

작성 : 배원룡 박사(본회 상임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