瑞雪(서설) - 하얀 도화지에 새 그림을 그리라네.

  瑞雪(서설)!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입니다. 이 서설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온몸으로 느끼면서 길거리를 뛰고 달리고 걷는 황홀한 기분! 이것은 아마도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어제 함께 공유한 기쁨이 아닌가 합니다.

  이명박 새로운 대통령께서 취임식을 마치고 서울 시청 앞 광장을 거쳐 청와대에 도착하실 때까지 하늘도 나지막한 구름의 차일을 드리워 주셨습니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민속에서 혼인식이나 장례식 같은 큰일에는 마당에 차일을 치고 그 아래 멍석을 펼치고 손님을 맞았습니다. 대통령 취임식, 국가적으로 이보다 더 큰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늘도 나지막한 구름장으로 옛날 큰일 때마다 차일을 치던 분위기를 연출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모든 행사가 끝나고 이명박 대통령께서 청와대에 도착하셨다는 뉴스가 전해진 뒤부터 약속이나 한 듯이 하늘에서 축하의 꽃송이를 뿌려 주셨습니다. 백의민족이 제일 좋아하는 색깔 그대로 순백의 꽃송이를 말입니다. 그것도 우수 경칩이면 대동강도 풀린다는 그 雨水(우수)의 절기에 분분한 春雪(춘설)의 아름다운 꽃송이를 하염없이 뿌려주셨습니다. 그것도 자정을 넘겨 일진이 바뀌도록 말입니다.

  예로부터 가정의 큰일 뒤에 내리는 눈을 瑞雪(서설)이라 불렀습니다. 상서의 길조로 보고 온 가족이, 온 가문이 좋아하곤 하셨습니다. 하물며 가정의 일도 그러한데 대통령 취임식은 나라의 경사입니다. 외국에서 수많은 하객들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하객들 중에는 더운 나라에서 눈 구경을 못하신 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하늘에서 瑞雪(서설)이 내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분들은 또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우리 민족을 가리켜 흔히 天孫(천손)민족이라 부릅니다. 그 까닭은 檀君神話(단군신화)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 합니다. 그런데 그 단군왕검의 아버지는 桓雄天王(환웅천왕)이시고, 그 할아버지는 桓因天帝(환인천제)이십니다. 天帝(천제)란 말은 하늘의 임금이시니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孫子인 단군의 자손이니, 결국 天孫民族(천손민족)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 천손민족이 새로운 왕(대통령)을 뽑아서 열방에 알리는 날, 하늘인들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우리 민족의 조상 할아버지이신 桓因天帝(하나님)께서 너무도 기쁘신 나머지 이렇게 아름다운 瑞雪(서설), 포근한 春雪(춘설)로 아낌없이 은총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소나무 가지 위에 곱게 쌓인 아름다운 눈을 보았습니다. 집집마다 건물마다 그 지붕에 하얗게 덮인 눈도 보았습니다.  조상 대대로 심어서 가꾸고 지난날 우리 민족이 힘을 합쳐 쌓고 세워온 자랑스러운 문화 위에는 칭찬의 눈꽃을 뿌려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리 잘못 걸어온 발자국도 덮어서 가려 주셨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하얀 백설로 덮어서 가려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순백의 땅 위에 이제 우리 손으로 새롭게 세운 대통령과 함께 새로운 그림을 그리라 하십니다.

  君君臣臣(군군신신)이란 말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국민은 국민답게 제 자리를 지키면서 자기 본분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봄에 하늘이 주신 瑞雪(서설)의 은총을 되새기며 하늘이 주신 순백의 도화지 위에 전 국민이 참여하는 훌륭한 모자이크를 만들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가꾸어 나아가시길 축원합니다.

배원룡 박사(본회 상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