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決母情(자결모정)

- 자식의 신분 상승을 위해 자결을 택한 어머니-

   조선 전기의 문인이며 서예가인  楊士彦(양사언)이 출세하게 된 데는 자식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사언의 아버지 希洙(희수)는 산에서 사냥 중에 비를 만나 산중의 외딴 집으로 피해 들어갔습니다. 집 주인 노인이 좋은 술과 안주로 희수를 정성껏 대접하였습니다.  희수가 안채를 힐끗 보니 아리따운 처녀가 손수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습니다.

   희수는 당시 상처를 하고 재취하기 전이었는데,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습니다. 희수는 아리따운 처녀가 첫눈에 마음에 들어, 노인에게 자신을 사위삼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노인은 신분이 미천하다며 극구 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희수가 거듭 간곡히 청하므로 마지못해 허락하였습니다.

   희수의 아내가 된 노인의 따님은 어질고 영리하다고 칭송을 받았고, 슬하에 士彦(사언)과 士奇(사기) 두 형제를 두었습니다. 사언은 뛰어난 재능에다 글씨 공부에도 힘써 후에 명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사언의 아버지 희수가 임종 시에 전처소생 士俊(사준)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너는, 네 동생들이 외가가 미천한 집안이라 해서 홀대하지 말고 잘 대우해야 한다.”

   장례 날 아침에 사언의 어머니가 사준에게 울면서 말했습니다.

   “尊公(존공: 남편)의 유언은 이미 들어 알고 있지만, 단지 이 못난 어미 때문에 자식이 여러 번 상복을 입는 일은 피하고 싶네. 내가 자결하여 존공과 더불어 삼년상을 함께 치르도록 하면 상복을 여러 번 입는 번거로움도 피할 뿐 아니라, 자식이 서자란 흔적을 없앨 수 있지 않겠는가? 이는 존공의 遺命(유명)을 따를 수 있음은 물론 내 소생들도 서자를 면하여 출세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마침내 사언의 어머니는 사언과 사기 형제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사준은 계모상을 부친상과 함께 모셨습니다. 사언은 庶出(서출)이란 신분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과거에 급제하여 크게 이름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출전 : 홍만종의 『해동이적』

◈ 조선시대에는 嫡庶(적서)이 차별이 심하였습니다. 그래서 홍길동전의 길동은 서출이란 이유로 대감의 아들이면서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도 못하였습니다. 단지 어머니가 천한 신분이라 하여 이처럼 신분상의 심한 차별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언의 어머니도 자신의 천한 신분으로 말미암아 자식까치 천한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게 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자신의 소생이 서출이란 이유로 과거 시험도 못 보는 불행을 면하게 해 주기 위해 남편을 따라 죽는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실로 참으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결단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자식을 위해서 대신 죽을 수 있는 것은 사언의 어머니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는 또 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셨습니까? 오늘 하루 보모님께서 베푸신 깊고 깊은 은혜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작성 : 배원룡 박사(본회 상임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