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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暮(세모)는 ‘해가 저문다.’는 뜻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때로 歲末(세말), 年末(연말), 세밑이라고도 합니다. 이를 명절이라 하여 절기 행사로, 세시 풍습으로 치부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매듭입니다. 이 매듭은 계절의 숨고르기이며 휴식입니다. 다음 도약을 위한 준비입니다. 이는 나무의 매듭과도 같습니다. 나무의 매듭이 마디인데 일정한 기간에 하나씩 생깁니다. 이 마디가 없으면 그 나무는 똑바로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계절에만 매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살이에도 매듭이 있습니다. 이 매듭은 나이와도 통하고 세월과도 관련됩니다. 한 해를 지나면서 잘한 일 잘못한 일을 짚어 보는 것도 세모입니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없는가. 나로 인해 피해를 당한 이웃이 없는가.
마중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이 귀하던 시절에 우리는 펌프를 사용했습니다. 펌프를 처음 작동하면 물이 쉬 나오지 않습니다. 이 때 한 바가지의 물을 퍼부어 주면 신기하게도 물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 안 나오던 물을 나오게 하는 물을 마중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한 바가지가 한 말, 한 드럼의 물도 나오게 합니다.
마중물은 자기를 버려 남을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성모 마리아도 자신을 버려 예수를 잉태한 분입니다.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하고 얼마나 많은 번민을 했겠습니까? 그 번민과 희생이 예수를 태어나게 하고 그 예수는 인류를 속죄시켰습니다.
김경수, 『나를 움직인 한마디의 말』(글누림) 中에서
◈ 이제 丁亥年(정해년) 세모입니다. 정해년을 매듭짓고 새로운 戊子年(무자년)을 맞이할 때입니다. 대나무는 그 마디 때문에 똑바로 곧게 자라면서도 휘어지지 않습니다. 모진 북서풍에도 꺾이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 매듭에 의해서 나이를 먹고 연륜이 쌓이는 것입니다.
음력 세모에 정해년을 잘 매듭지으시고 무자년 새해에 새로운 매듭을 향한 첫 가지를 힘차게 뽑아 올리시길 비옵니다.정해년 한 해가 변하여 무자년의 마중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작성 : 배원룡(본회 상임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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