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오솔길 제20화
네 편과 내 편이 없는 上元의 보름달
우리 민족은 고래로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유독 정월 보름을 ‘대보름’이라 하여 명절의 하나로 즐겨 왔습니다. 이 정월 대보름이 上元입니다.
농사를 위주로 살아온 우리 조상들은 上元을 농사철을 앞 둔 마지막 절기라 하여 특히 중시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놀이 풍습도 "농사를 준비하는 놀이"와 "건강과 소원 성취를 바라는 놀이"가 주종이었습니다.
달집을 만들어 불에 태우고 떠오르는 달을 향하여 소원을 빌며 절하던 때도 보름이었습니다. 온 마을의 아이들의 잔치가 되고 어른들은 풍물놀이로 마을의 잡귀를 물리치는 때도 보름이었습니다. 오곡밥을 먹고 부럼을 깨며 귀밝이술을 마시고, 들판에서 쥐불놀이를 하며 언덕의 마른 풀을 태우던 그 난만함이 上元의 정취입니다.
이때는 너와 내가 없고 앞집과 뒷집이 없이 모두 우리였고, 내 편이었습니다. 가진 자도 못가진 자도 구별이 없었고 강남 강북의 대결도 없었고 종교적 갈등을 부추기는 자도 없었습니다. 절에 갈 사람은 절에 가고, 장독대에서 조상신께 정화수로 빌 사람은 빌게 하던 세상, 모두가 和而不同[화이부동(필자 주: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아니함)]이랄까 각자의 분수만큼만 놀고 바라고 즐거워했었습니다. 코드 문화도 없었고 네 편 내 편도 없었습니다.
보름달은 둥급니다. 모나지 않고 둥글며 탐스러운 원형은 우리 민족성의 표상입니다. 일찍이 원효스님이 부르짖은 和諍(화쟁)사상( 다른 집단이나 종교 민족 간의 화합으로 서로가 상호공존, 공생하는 사상)이나 無碍(무애)정신도 그런 마음의 표출이었는가 싶습니다. 막힘이 없고 장애가 없는 그런 마음의 세계 말입니다.
그런 의식이 우리네 초가집 처마의 둥그럼에도 보이고 한복의 치마나 여인네 버선의 곡선에도 보입니다. 문고리의 손잡이도 원이었고 숟가락도 원입니다. 포크나 나이프로 설치는 이들과는 다른가 합니다. 심지어 죽어서 가는 무덤도 원형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민족은 원형 속에 살고 있습니다.
김경수, 『나를 움직인 한마디의 말』(글누림) 中에서
◈ 上元의 보름달은 대개 둥그스름한 동산 위로 떠오릅니다. 동산도 달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동요에서도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동산 위에 떴지. 달달 무슨 달 거울 같은 보름달, 어디 어디 비추나 우리 동네 비추지.”라고 하였습니다. 불편부당 그 어느 곳에도 걸림 없이 둥글고 밝은 보름달처럼, 새해에는 모든 일 원만하시고 밝게 빛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빕니다. 보름달이 네 편도 내 편도 없이 다 비추듯이 무자년 새해에는 편 가르지 말고 모두가 하나 되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작성 : 배원룡 박사(본회 상임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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